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(영성)/통일 과정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35d3e33jw1ew13uxw8a9j23342d0e83.jpg|width=100%]]}}}|| 전국시대가 점점 무르익음에 따라 7국 전쟁의 양상은 점차 총력전에 가까워졌다. 이것은 국가 간의 전쟁이 결코 군사력뿐만이 아닌 정치력, 외교력, 경제력까지 밑바탕이 돼야만이 상대방을 찍어 누를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. 이런 시대적 변화를 맞이하여 [[진(영성)|진(秦)나라]]의 정치, 군사 정책도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. 당시 진나라의 영토는 천하의 3분의 1, 인구는 천하의 10분의 3, 부는 천하의 10분의 6을 차지했다.[* 단 땅덩어리가 저렇게 큰데 인구가 고작 3할이라는 점에서 보듯 진나라는 영토에 비해 인구는 적은 나라였다. 땅만 보면 진나라에 비해 코딱지만한 한나라와 위나라가 당장이라도 집어삼켜질듯 싶지만 진시황 이전까지는 버틴 것도 이 때문일지도?][* [[https://zhuanlan.zhihu.com/p/433235193|중국발로 추정되는거 외엔 출처불명이지만 당시의 전국칠웅의 국력비는 이정도라는 지도도 있다.]] 지도로 보면 진나라의 국력은 국경을 맞댄 국가들 중에서 한나라 빼고는 그런대로 비슷비슷하기에 진나라가 압도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.] 하지만 진나라는 그럼에도 개혁을 거듭하여 진시황의 즉위 이후 내정적으로 6국 백성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6국의 인민을 빼앗는 정책을 펼치고 종래의 수급제를 수정하여 무분별한 살육을 막으며,[* 수급제는 보통 적을 '''죽여''' 그 목을 베어 오면 인정해준다. 당연히 반드시 적을 죽여야 상을 받으니 무차별적인 살육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[[장평대전]] 이후 조나라의 40만 군사들이 학살당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의견이 있다.] 그 포로들을 진나라의 노동 자원으로 활용했다. 그리고 대규모 토목사업을 일으켜 국력을 부강하게 만들었다. 그중 '''정국거'''라는 수로는 서쪽의 경수(涇水)를 끌어들여 동쪽의 낙수(洛水)[* 낙양 인근의 낙수가 아니라 관중분지를 흐르는 낙수이다.]의 물을 댈 수 있는 관개수로로 정국거를 건설함으로 인하여 관중 지방에는 2억 2천만 평의 농경지가 새로 생겨나고 그로인해 4천만 섬의 곡식이 생산되었다고 한다.[* 본디 정국거는 진나라의 국력을 약하게 하려는 한나라의 계략으로 정국이라는 간첩의 주도로 건설되었는데 중도에 정국은 간첩임이 발각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정국은 이것이 완성된다면 한나라는 잠시 생명을 연장하겠지만 결국은 진나라에게 더 큰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진나라에서도 타당하다고 여겼는지 정국을 살려주고 수로 건설도 그대로 유지했다. 이후 결과는 당연히 앞에서 본 것과 같다.] 이것은 진시황의 통일전쟁 기간 진나라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수십만의 대군을 동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. 한편 [[울료]], [[이사(전국시대)|이사]], [[요가(전국시대)|요가]]를 중용하고 외교적으로는 6국의 대신들을 매수해 왕과 호신들을 [[이간]]질하며 각종 첩보전을 펼쳐서 6국의 합종을 막고, 6국 조정 내부의 분열을 조장했다.[* 특히 조나라와 제나라는 왕의 측근이 진나라에 매수당해서 조나라는 이목을 숙청했고 제나라는 다른 나라들이 공략당하는 동안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상황이 일어났다.] 여담으로 이 시기(BC 236~BC 221년) 시기의 육국의 군주들은 [[연왕 희]](연나라) [[위경민왕]]과 [[위왕가|위왕 가]](위나라) [[조도양왕]], [[조유목왕]], [[조가]](조나라) [[제왕건]](제나라) [[초유왕]], [[초애왕]], [[웅부추]], [[창평군]](초나라) [[한왕 안]](한나라)인데 대부분 시원찮은 군주들이었다.[* 그나마 이중에서 제대로 싸워보기라도 한 왕은 조가와 창평군 정도다. 그나마 이들도 나라가 거진 다 망한 뒤에야 옹립되어 별 힘을 쓰지 못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